Canada Vancouver Joffrey Lake 영화같은 풍경

영화이야기

오동진 일본영화 <해피엔드> 비평

폴리티카 2025. 5. 3. 12:31
반응형

1991년생, 올해로 34살인 일본 네오 소라 감독(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의 영화 ‘해피엔드’는 발칙한 작품이다. 그만큼 정치적이고 혁신적이다. 그럼에도 선언에 머물지 않고 전략적이지만도 않으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스토리가 꽉 짜여져 있다. 또 한 명의 ‘미친 천재’의 출현을 보는 듯하다. 일본 영화계가 고레에다 히로카즈(1962)에서 하마구치 류스케(1978), 그리고 미야케 쇼(1984)에 이어 계속해서 세대를 이어 가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네오 소라는 새로운 발굴이다.


'해피엔드’는 처음 29분 간은 고만고만한 청춘물 드라마처럼 보인다. 기껏해야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 식스티 나인』 류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느 날 교장실에 몰래 들어가 교장 책상에 똥을 싸고 나온다. 영화 ‘해피엔드’의 주인공 유타(쿠리하라 하야토)도 그런 반항아이다. 아주 ‘못돼 처먹은’ 아이는 아니다. 수업시간에 멍때리고 머리속에는 테크노 음악 리듬밖에 없으며, 동아리 반에서 밤새 놀고 자는 것을 좋아 하는 정도이다. 당연히 학업이나 장래에 관심이 없다. 악기 판매상에서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번다. 유타는 교장이 애지중지하는 스포츠 카에 장난질을 하고 이게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

유타와 가장 친한 아이들은 비주류권 자식들이다. 일본 사회에서 이른바 비(非)국민의 1번 타자급인 자이니치(재일한국인) 코우와 가장 친하다. 코우의 성은 박(히타카 유키토)이다. 엄마가 한국식 식당으로 어렵게 어렵게 돈을 번다. 엄마는 아이가 귀화해서 정착하기를 원한다. 당연히 엄마 같은 사람은 일본 혐한족, 우파들에게 핍박을 받을지언정 입 다물고 사는 삶에 익숙해진 소시민이다. 코우 외에 톰(아라지)은 흑인이다. 밍(시나 펭)으로 불리는 여학생은 중국계이다. 대륙 말도, 대만어도 다 서툴다. 일본어가 모국어이다. 그럼에도 그냥 이주민 학생 취급을 받는다. 아타라는 아이(하야시 유타)는 키가 작다. 이들 문제아 5명은 사실 다 일본 사회에서 이런저런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영화 ‘해피엔드’가 특이한 것은 두 가지 지점에서 허구를 실제와 겹쳐 놓으며 오히려 그 현실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근(近)미래이다. 아마도 수십 년 후쯤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의 현실과 거의 다르지가 않다. 거의가 아니라 그냥 지금 현실이다. 미래인 척, 그래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는 앞날의 사건인 척, 사실 지금도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재차 강조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총리의 긴급사태법령이 학교에 적용될 때 벌어지는 일

또 하나는 일본의 미래 정치계를 슬쩍슬쩍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게 지금의 일본 정치판이라는 점이다. 영화 속 총리는 키토라는 인물이고, 지금 막 긴급사태법령을 입법 제정한 상태이다. 총리의 핑계는 지진이다. 지진 등 재해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저런 차별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시위를 억누르겠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그걸 잘 알고 있으며 반(反) 키토 정권 시위가 이곳저곳에서 벌어진다.


그런 정치적 배경을 감독 네오 소라는 아이들의 고등학교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학내 문제가 일본 사회 문제와 직결돼 있고 사회 문제가 일본 고등학교 커뮤니티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밖의 문제는 안의 문제이고 안의 문제는 밖의 문제가 된다. 교장은 자신의 스포츠카를 망가뜨린 사건을 가리키며 학내에 폭력사태를 꾀하려는 주범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것을 방지하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학내에 AI 감시시스템 카메라를 설치한다. 이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카메라에 의해 벌점으로 감지된다. 벌점 10점이 넘으면 무조건 퇴학조치 된다.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진다. 그중에 자이니치인 한국계 학생 코우가 좋아하는 여학생 후미(이노리 키라라)는 교장실 점거를 주도한다. 후미는 학교의 젊고 진보적인 선생을 따라 거리 시위에도 참여한다. 어학생 후미는 경찰이 국가와 부유층을 위한 관료기구일 뿐이라고 주장할 만큼 똑 부러진 성격이다. 후미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길을 가다가도 특별주민 신분증의 제시를 요구 받을 만큼 차별을 받고 있는 코우가 자신들의 편에 설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 입장에 따라 수없이 내부 갈등을 빚는 운동권

‘해피엔드’가 놀라운 것은 체제와의 싸움을 하는, 이른바 ‘운동권’ 안에서도 각자의 개인 사정과 생각에 따라 수많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스토리와 에피소드로 잘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반항아지만 주인공 유타와 코우는 학내 문제, 곧 AI 감시시스템 이슈를 놓고 갈라지기 시작한다. 유타와 코우는 교장의 자동차를 훼손한 공범 관계이지만 유타는 코우가 차별받는 민족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해 혼자서 모든 것을 뒤집어 쓸 생각이다. 그런 자신을 코우가 웬지 모르게 멀리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 유타는 섭섭하기 그지없다. 여학생 후미에게서 영향을 받은 코우는 친구 유타에게 “우리가 웃고 즐기기만 하는 사이에 모두 다 죽게 돼. 정신 좀 차려!”라고 말하고, 유타는 유타대로 그런 코우를 비웃고 낄낄대며 “어차피 죽을 거라면 같이 웃다가 죽자”고 말한다. 어느 것이 옳은가. 여학생 후미는 교장실 점거로 감시시스템 철거를 약속 받고 나오면서 “결국 권력자의 양심에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하지만 코우는 이번엔 그런 그녀에게 거꾸로 “지금은 웃어도 된다”며 “즐기지 못하면 친구를 사귀지 못 한다”고 말한다.

 


영화 ‘해피엔드’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청춘보고서인 척, 지금의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를 향해 울리는 정치적 경종과 같은 내용의 작품이다. 국가와 사회는 경직될대로 경직돼 비상입법이니 비상계엄이니 하는 말이 마치 일상어처럼 횡행하고 있음에도, 그런 사회를 고치는 것이 맞을지, 망하게 놔두는 것이 맞을지,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 해답을 찾아 가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교장이 감시 카메라를 없애는 대신 자동차 훼손범의 자수를 조건으로 내걸자 강당 안에 모인 아이들이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져 아우성이 일어나는 장면은 이 영화가 결국 그리려는 현실의 뼈아픈 자화상 같은 모습이다.


아이들 가르치려 들지 말고 손 잡고 이 영화 보러 가면 어떨까?

이야기로 정치 현실을 이렇게 명징하게 그려낼 줄 안다는 것은 감독 네오 소라가 정치를 넘어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 깊은 사유를 거듭해 왔음을 보여 준다. 이 영화는 신세대들을 위한 일종의 정치 교과서이다. 이런 영화는 10대 아이들, 20대 ‘아들들’과 같이 관람하는 게 좋다. 말 백 마디, 천 마디보다 이 영화 한 편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가르치려 들지 말라.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열어갈 것이다. 4월 30일에 전국 개봉한다. 극장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