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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할 인물 박태웅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

폴리티카 2025. 4. 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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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새로운 정책 실험 '녹서' 작업 이끈 박태웅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

"느닷없는 비상계엄 때문에 망할 뻔 했죠."

당 정책의 밑그림이 될 녹서(그린 페이퍼) 제작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실험을 이끌었던 박태웅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은 아직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지난해 10월 녹서 작업 팀을 꾸렸을 때만 해도 10개월 정도 진행할 프로젝트로 기획했는데 12.3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고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리면서 일정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지난 2월 정책소통플랫폼 '모두의 질문Q'를 출범시켰고 두 달간 시민들로부터 정치·사회·경제 각 분야에서 시급한 과제들에 대한 질문을 모았다. 급하게 서둘렀지만 그래도 마감된 3월말까지 6000여 개의 질문들이 모였다. 시민들의 요구가 담긴 이 질문들을 분야별로 분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거쳐 700페이지에 이르는 녹서를 완성하기 직전이다. 이 녹서는 오는 27일 선출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박태웅 센터장은 지난 16일 진행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녹서가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전달되면 그 이후 녹서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민주당이 주도해 나가야 한다"라며 "당에서 이름을 걸고 한 캠페인이니 대선 후보가 임기 내내 끌어안고 그 질문들을 풀어나가겠다고 약속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녹서는 정책 결과물을 담은 백서와 달리 여러 의제에 대한 질문과 토론과 제안 등을 담은 일종의 정책 제안서다. 박태웅 센터장이 지난해 총선 이후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녹서 작업을 제안했고 이재명 전 대표도 공감을 표시하면서 당 차원의 준비가 시작됐다.

박 센터장은 "유럽연합에서는 아주 주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풀 때는 녹서를 내는데 이 녹서를 사회 전체에 던지고 답을 주세요라고 요구하면 시민단체·재계·노동계·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답을 던진다"라며 "이런 과정을 거쳐 녹서에서 백서까지 가는 데 2년 정도 걸리는데 유럽연합에서 백서가 나왔다는 얘기는 사회 전체의 합의가 실려 있다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박 센터장은 이번에 발간하는 녹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문 분야가 '정치와 거버넌스(통치 체제)', 그 중에서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대한 우려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검찰의 기소 독점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거나, 친위 쿠데타로 물러난 대통령의 권력을 국무총리가 승계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있었다"라며 "이런 상식적인 문제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집권해도 시민들의 저항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의 '인공지능(AI) 책사'로도 불린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이 후보가 박 센터장의 책 <눈 떠보니 선진국>을 인상 깊게 읽은 후 언론에 인생의 책으로 꼽은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민주당의 IT 관련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박 센터장은 지난해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 합류했다.

<박태웅의 AI 강의 2025>를 펴내기도 한 그는 "이재명의 책사는 과한 표현"이라면서 "이 후보가 AI에 대해서 발언하고 여러 행보를 하는 것은 누구 한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본인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센터장과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녹서는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 유럽연합에선 중요한 문제 풀 때 먼저 녹서 낸다"

- 어떻게 '모두의 질문Q'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나.

"제가 2021년 출간한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책에서 녹서라는 걸 소개했다. 한국이 후발 추격국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이 됐는데 너무 빨리 오느라고 건너뛴 게 많다. 그 중 하나가 공론화다. 세계 최고의 속도로 추격해야 되는 후발 추격국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방식이다. 근데 문제는 이제 선진국이 됐는데도 후발 추격국의 전략과 태도를 갖고 있으니까 안 맞는 게 너무 많이 생기는 거다. 그래서 유럽연합에는 대단히 훌륭한 녹서라는 제도가 있으니 차용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해 총선 끝나고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 가서 했었다. 그랬더니 나중에 '그럼 말을 꺼낸 당신이 맡아서 해보라'고 제안이 왔다. 뱉은 말이 있으니 거부를 못했다.(웃음)"

- 당시 민주당 워크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더 했나.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누가 정권을 잡아도 한 분야에서 10년, 20년 일한 공무원들에게 휘둘리는 게 사실이다. 누가 집권하든 집권당 이름이 '공무원당'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래서 '아직 대선까지 3년 남았으니 지금부터 시민들에게 당대의 대한민국 사회가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뭔지 받아서 공론화를 하고 그 내용으로 백서를 내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준비해서 집권하면 공무원들에게 휘둘릴 일이 없다고 했다."

- 녹서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다.

"녹서는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이다. 선진국이 됐다는 건 베낄 게 없다는 말이다. 가장 앞서 있으니까. 그래서 선진국은 새롭게 뭘 하려면 먼저 '이게 뭐다'라고 정의부터 시작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은 먼저 질문들을 모으는 것이다. 거대한 도전이 생겼을 때, 예를 들어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AI)에 대응이 필요하다면 먼저 답해야 할 질문들을 다 모은다. 그럼 사태를 대단히 다각적으로 보게 된다. 이 질문들을 모아 범주화해서 정리한 게 녹서다."

- 유럽연합에서는 어떤 식으로 녹서를 활용하나.

"유럽연합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풀 때는 다 녹서를 낸다. 녹서를 사회 전체에 던지고 답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시민단체, 재계, 노동계, 학계가 다 제각기 머리를 맞대고 자기들의 답을 던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녹서에서 백서까지 가는 데 2년 정도 걸린다. 유럽연합에서 백서가 나왔다는 건 사회 전체의 합의가 실려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백서 낸 이후 실행 속도와 실행의 권위가 어마어마하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대한 질문들 가장 많아, 통제 방안 반드시 필요"

- 민주당 안에서 처음 녹서 작업을 시작할 때는 어떤 계획이 있었나.

"유럽연합처럼 2년을 하자고 하면 민주당이 안 받을 거 같아서(웃음) 10개월을 제안했다. 다섯 달 동안 주요 주제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론화하고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작년 10월에 팀을 꾸려서 시작했는데 계엄이 터진 거다. 그래서 망할 뻔 했다. 10개월을 끌고 갈 수가 없게 됐다. 그래도 10월에 시작했으니 내년 3월 말까지는 질문들을 받아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 보고 지난 2월 초에 모두의질문Q를 출범시켰다."

- 출범 이후 지금까지 올라온 질문 개수 등 현황은 어떤가?

"지난 3월 31일 질문을 마감했다. 들어온 질문이 6000개가 넘었다. 녹서로 만들면 700페이지 정도 될 것 같다."

- 질문 6000개 중 가장 많았던 질문 혹은 분야는 뭔가.

"정치와 거버넌스(통치 체제) 분야가 가장 많았다. 분야별 질문들의 비율은 정치 및 거버넌스가 16%, 사회복지가 14%, 교육과 입시가 10%, 법과 윤리가 10%, 경제 산업 변화가 7%, 노동 일자리가 7%, 도시 주거가 7%, 가족과 개인의 삶 5% 정도다.

구체적으로 보면 견제 받지 않는 권력에 대한 질문들이 굉장히 많았다. 검찰의 기소 독점, 검찰이 기소를 안 하거나 엉터리로 해도 우리가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 헌법재판 관련해서도 판사 8명이 결정하면 우리는 꼼짝도 못한다는 점, 또 친위 쿠데타의 경우에도 물러난 대통령의 권력을 국무총리가 승계가 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또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쫓아낼 때도 당연히 투표를 통해서 해야지, 왜 재판관들이 결정하느냐라는 질문들도 많았다."

- 질문을 마감한 후 녹서 작업을 어떻게 진행해 왔나.

"질문들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서 핵심 주제별로 정리했다. 분야별로 시민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생각하거나 가장 중요하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질문들이 뭔지 모두 정리했다. 이걸 보면 시민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었는지 당대의 공통 분모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면 함께 풀어보자고 근거를 가지고 얘기할 수 있게 되고 연대 의식을 가질 수 있다. 또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될 것이다."

- 녹서 발간 후에는 어떻게 활용되나.

"녹서의 주인공은 시민들의 질문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시민들의 요구가 담긴 녹서를 전달하는 자리를 만들 예정이다. 대선 후보에게 전달되면 이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민주당이 주도해 나가야 한다. 원래는 녹서를 공론화해서 백서로 만들어서 공약을 만드는 형태가 됐어야 하는데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서 시간이 촉박해 꼬인 측면이 있다. 당에서 이름을 걸고 한 캠페인이니 대선 후보가 임기 내내 끌어안고 이 질문들을 풀어나가겠다고 약속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지금 모두의질문Q는 베타 버전이라고 할 수 있어서 민주당이 계속 업그레이드 해나가야 한다.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민주당 의원들이 질문 큐레이터가 돼서 열심히 참여했는데 의원들이 답을 단 게 300개가 넘는다. 아직도 답변을 하고 있다. 이런 작업들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 계엄 이후 터져나온 광장의 시대적 요구들이 녹서에 많이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녹서 내용 중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공약으로 담겨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뭐라고 보나.

"우선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대한 시민적인 통제 방안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검찰 수사권 없애고 공소청을 만들자는 건 압도적인 합의가 돼 있는 주제라고 봐야 한다. 또 전관예우를 공식적인 비리로 규정해 처벌하라, 이해상충이 있을 때 자발적으로 회피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안 하면 처벌하는 것들은 이미 선진국들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상식적인 개혁들을 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집권해도 시민들의 저항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이재명 할아버지가 와도 못 견딘다."

- 이번 녹서 작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

"윤석열씨가 녹서가 나오는 걸 정말 싫어했나 보다.(웃음) 12.3 비상계엄 때문에 계획대로 작업을 하지 못했다. 광장에 무게 중심이 있다 보니 제대로 시민들의 에너지를 모으기가 어려웠다. 모인 질문들을 가지고 오프라인에서도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작업도 하려고 했는데 못 한 게 아쉽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6000여 개의 질문이 모였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과 고민이 드러났는데 2025년 대한민국 사회에 스냅샷 정도는 된다고 자평한다."

"전체 AI 생태계 육성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 이재명 전 대표의 AI 책사로 불린다. 이재명 대표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책사는 과한 표현이다. 전에 제가 민주당의 IT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은 있지만 이 전 대표와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다. 이재명 전 대표가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어느 신문사에 인생의 책으로 '책 내용이 내 생각과 똑같다'라며 <눈 떠보니 선진국>을 꼽은 게 인연의 시작이다."

- 이 전 대표가 대선 첫 공약으로 AI 관련 공약을 내놓을 정도로 큰 관심을 쏟고 있는데 조언해 준 게 있나.

"지난 번 모두의질문Q에서 AI 좌담회를 했을 때 제가 책을 쓴 것도 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많이 드렸다. 곁에서 보면 이 전 대표는 정말 학습 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정말 빨리 배운다. 최근 이 전 대표가 AI에 대해서 발언하고 여러 행보를 하는 것은 누구 한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본인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라고 보는 게 맞을 거다."

- 이재명 전 대표가 최근 대선 공약으로 AI 기본 구상을 밝혔다. 가장 먼저 100조 투자를 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보나.

"AI가 왜 중요한가는 생태계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첫 번째 오해는 우리가 큰 모델을 못 만드니까 작은 모델을 만들자는 말이 있다. 근데 그건 정말 AI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거대 언어 모델이 있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추론형 모델이 나오는 거다. 거대 모델 없이 작은 모델을 만들 수 없다.

두 번째로 메타나 구글 등의 오픈 소스를 가져다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안 된다. 조건이 매일 바뀐다. 당장 지금 중국에 대해 미국의 통제가 엄청 커지고 있다. 오픈 소스를 쓰자는 것은 생사 여탈권을 남한테 주자는 말과 비슷한 거다. AI가 범용 기술인데, 앞으로 모든 산업에 가져다 붙을 텐데 이런 전기와 같은 범용 기술의 사용 조건이 남의 뜻에 달려 있어서는 안된다. 기반 모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이다. 철강부터 자동차 반도체까지 전체 밸류체인을 자기 나라 안에 갖고 있는 두 나라가 우리나라와 중국이다. 지금은 아슬아슬하게 우리가 조금 앞서 있다. 근데 이게 AI와 결합하는 순간 다 뒤집어진다. 지금 로봇 청소기는 중국 제품이 삼성, LG보다 훨씬 비싸다. 자율주행은 바이두나 화웨이가 훨씬 낫다. 전체 산업 영역에 AI가 결합할텐데 AI는 중국이 한국을 앞서 있다. 이 때문에 전체 생태계 육성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이는 지역 거점 대학을 육성하는 전략이기도 하고 지역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문제이기도 하고, 또 노령화하는 중소기업들을, 청년들을 살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 우리나라가 AI 투자 산업 육성에 뒤쳐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1년에서 1년 반 정도 뒤쳐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민간 기업들과 대학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다. 지금 100조 투자하겠다는 게 정부에서 GPU 사주고 개발비 내 줄 테니 국가대표급 선수들 다 모아서 같이 한번 만들어 보자는 건데 여기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돼 있다."

- 이재명 전 대표가 국민들이 무료로 AI를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방식이 가능하다고 보나.

"지금도 챗GPT나 제미나이는 무료 버전을 쓸 수 있다.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는 건 AI를 국민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 쪽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또 모두가 접근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AI를 충분히 잘 쓸 수 있게 지원하는 게 맞다."

이승훈,복건우(bok@ohmynews.com),권우성(wskwo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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